‘가령 양(梁)장의’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제주도(오늘날의 제주특별자치도. 옛 이름은 탐라 – 옮긴이 '마음을 지키는 사람'. 아래 ‘옮긴이’) 가령 마을 사람으로(그러니까 ‘가령 양장의’는 ‘가령 마을 사람인 양장의’라는 뜻이고, ‘양장의’가 이름이다 – 옮긴이) 글에도 능하였을 뿐 아니라, 기지(奇智. 기발하고 특출한 지혜 – 옮긴이)도 뛰어났다.
그는 서울(당시 이름은 한양/한성 – 옮긴이) 출입을 자주 하였는데, 서울 사람들에게서 ‘섬 사람’이라고 모욕을 당할 때마다 반드시 보복을 하곤 하였다.
그는 성균관에서 글공부를 하였는데, 글로나 말로나 여러 서울 선비들을 앞질렀기 때문에 서울 선비들에게는 그가 아니꼬운 존재였다.
어느 날, 양장의가 없을 때에 여러 선비들이 의논하였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저 ‘똑똑한 척하는 섬놈(양장의 – 옮긴이)’을 골탕먹일까 궁리하다가 묘안을 짜냈다. 그들은 양장의가 늘 앉는 자리의 마루를 떼어 내고, 그 위에 방석만 덮어 두어 그를 마루 밑으로 떨어지게 하려고 하였다.
밖에 나갔던 양장의는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와서는 늘 자기가 앉던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풀썩하니 자리에서 빠져 마루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모여 앉아 그 광경을 보던 여러 선비들이 배꼽을 쥐고 웃어대었다. 그때였다.
“제 아버지를 장사지내면서 상제(喪制. 어버이나 조부모를 장사지내는 사람 – 옮긴이)들은 울지도 않고 웃기만 하는 거냐?”
마루 밑으로 빠진 그는 웃는 여러 선비를 향해 크게 꾸짖는 것이었다. 선비들은 웃음을 그치고 갑자기 조용해졌다.
“너희놈들은 명색이 선비들이라고 하면서, 돌아가신 부친을 묻는 예의도 모르느냐? 서울 놈들은 다 그렇게 예의 범절에 어두우냐?”
어리둥절하고 있는 선비들을 향해 그는 다시 꾸짖었다.
“아니, 내가 이렇게 너희들이 만들어 논(놓은 – 옮긴이) 무덤에 묻히게 되었으니, 너희들을 상제로서 마땅히 곡을 하여야 할 게 아니냐? 너희들은 다 내 아들인 것이야.”
그제야 선비들은 그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양장의를 곯려 주려 했던 그들이 모두 ‘양장의의 아들’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선비들은 아연실색(뜻밖의 일에 너무 놀라서 얼굴색이 바뀜 – 옮긴이)하고 말았다.
“이놈들아, 어서 곡소리를 내어라.”
마루 구덩이에서 다시 양장의는 큰 소리로 선비들을 꾸짖었다. 선비들은 더 할말이 없었다. 결국 놀려 주려던 그들은 모두 양장의의 아들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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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의가 어느 해에 서울에 갔다 돌아오다가 전라 감영에서 제주(제주도 – 옮긴이)에서 올라온 어떤 사람을 만났다. 고향 사람이라 반가운 김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던 중에 양장의는 그의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때(근세조선 시대 – 옮긴이)에는 나라에 물건을 진상하는 일이 어려웠다. 제주도에서는 소나 말을 전라(전라도 – 옮긴이) 감영을 통해서 서울로 진상했다. 진상 물품을 모으는 일도 그랬지마는, 물건을 바치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그는 바로 검은 소를 상감(上監.‘임금’의 높임말 – 옮긴이)에게 진상하러 온 사람이었다. 며칠 전에 왔으면서도 진상이 잘 안 되어 지금껏 돌아가지도 못하고, 노자는 다 떨어져서 사정이 어렵게 되었다고 하였다.
“왜 진상이 잘 안 된다는 거요?”
얘기를 듣고 양장의가 그 연유(사유/일의 까닭 – 옮긴이)를 묻자 “무슨 큰 이유도 없은데 내일 오라, 내일 오라, 하면서 받아 주질 않으니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돈이라도 있으면 좀 갖다줄 텐데, 이제 노자돈도 없으니 소라도 팔아먹고 죽든지 살든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하고 한탄하였다.
듣고 보니 딱하였다. 양장의도 진상하는 데 따른 관리들의 횡포를 약근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듣고 보니 작은 일이 아니었다. 생각하니 화가 났다. 어떻게 하면 진상도 원만하게 하고, 그 감사까지 골탕을 먹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그저 죽은 척하고 내일 한 번만 더 가서 사정을 해보시오. 그렇게 해도 안 되면 소를 팔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양장의는 우선 이렇게 위로하였다.
진상하러 온 사람은 다음날 다시 소들을 끌고 가서 간청하였다. 전라 감사는 비스듬히 자리에 기댄 채로, 아래 와서 허리를 굽히고 있는 자(진상하러 온 사람 – 옮긴이)를 힐끗 내려다보는데, “지금 나리께서 바빠 받을 수 없으니 내일 와요.”하고 호방이 호기 있게 말하였다.
그는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와서 그 사연을 양장의에게 모두 말하였다.
다음날은 양장의가 직접 소를 몰고 감영으로 갔다.
“나라에서 쓸 소를 진상하러 제주에서 왔으니, 감사는 나와서 얼른 받으시오.”
양장의는 들어가면서 큰소리를 쳤다. 나졸들이 속으로는 웃으면서도, 어제까지 매일(날마다 – 옮긴이) 드나들던 자가 아니고, (게다가 – 옮긴이) 호령까지 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어, 저 친구 봐라. 진상이 잘 안 되니까 이제는 큰소리까지 치네.”
“아니, 미친 거 아닌가?”
“미칠 만도 하지. 이제 어떡할 거야? 소를 팔고 도망을 치든지, 밭을 팔아 뇌물을 쓰든지 해야지. 어떡하겠어?”
“진상을 한두 번 해봤나? 왜 다 알면서, 처음부터 좀 잘할 일이지.”
저마다 한마디씩 지껄여댔다. 그러나 양장의는 그들이 떠드는 소리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말했다.
“나라에 진상할 소를 대령하였으니, 감사는 나와서 받으시오.”
‘아닌 밤에 홍두깨 식으로, 웬 초라한 선비(양장의 – 옮긴이)가 나타나서 큰소리치는가.’하고 감사가 내다봤다.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때였다.
“감사는 그 행태가 뭐요? 우리가 상감께 소를 진상하려 하는데, 그 물품을 받는 신하의 태도가 아니 되었소. 향을 피우고 의관을 정제한 후(뒤 – 옮긴이) 받아야 된다는 건 어느 관리라도 아는 바요. 그게 올바른 예의가 아니오? 어이 무엄도 하오.”
양장의는 감사를 넌저시 바라보며 한마디 하였다. 감사는 그 말을 듣고서는 얼굴빛이 싹 변하였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보통으로 보아 넘길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 같은 신하에게는 상감께 바칠 소를 대신 바칠 수 없소. 나는 이 사실을 조정에 아뢰어야 하겠소.”
양장의는 소를 몰고 나오려 하였다.
“여보시오. 뭘 그리 하시오. 몰고 온 소는 그냥 두고 가시오.”
감사의 눈치를 살피던 호방이 달려나와서 양장의에게 말했다.
“이놈, 어디서 하던 버릇을? 아랫놈이 어디다 대고 상감께 바칠 물건에 대해 함부로 나불거리느냐? 감사가 나와서 사정을 해도 안 될 일인데.”
양장의는 이렇게 꾸짖고 소를 몰고 돌아와 버렸다.
그러고 나서 기다리자니 감영에서 전갈이 왔다. 지난번에는 분수를 모르는 아랫것들이 (진상품을 – 옮긴이) 물리친 모양인데, 다시 (진상품을 – 옮긴이) 갖고 오면 예를 갖추어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장의는 (그 말을 – 옮긴이) 듣질 않았다.
“한 사흘만 기다리다가 바치도록 해요. 그때에도 늦지는 않으니, 마음 푹 놓고 있으시오.”
양장의는 진상하는 소를 갖고 온 사람에게 여유 있게 말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감영에서는 매일 사람을 보내어 소를 진상하여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노자에 보태어 쓰라고 돈까지 마련하여 사람을 보내곤 하였다. 그러나 양장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기회에 저놈들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아야 돼요. 그래야 다음부터 소를 진상하는 일이 쉬워져요.”
그러면서 사흘을 기다렸다. 그동안 매일 사람이 와서 간청하였다. 사흘째 되던 날, (양장의는 소를 진상하려던 사람과 함께 – 옮긴이) 소를 몰고 감영으로 갔다.
“나, 감사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여 이번에는 그냥 바치고 가지마는, 다음부터 이러면 우리는 바로 서울로 올라가 상감께 사실대로 아뢰고 직접 바칠 생각이오.”
양장의는 못 이기는 척하고 소를 바쳤다. 그리고 나오는데, 노자에 보태어 쓰라고 호방이 엽전 꾸러미까지 건네 주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그 엽전을 가지고 며칠을 푹 쉬고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그 후부터는(그 뒤부터는 – 옮긴이) (제주도 사람들이 – 옮긴이) 전라 감영에 소를 진상하는 게 아주 쉬워졌다 한다.
- 『 제주도 이야기 1 』(현길언 지음, 강요배 그림, ㈜창비 펴냄, 2007년)에 실린 제주특별자치도(道)의 야사(野史)
- 음력 3월 16일에, 양장의 선비의 이야기를 읽으며 ‘탐라군(郡)이 독립을 잃고 근세조선에 편입된 뒤부터는 뭍 사람들 때문에 – 나아가 근세조선의 관청 때문에 – 고생하였구나.’ 하고 생각하며 짠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경상남도가 호적상 고향인)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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