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아난세’는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약이 올랐습니다. 어느 날, 그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지혜를 모아서 자기와 후손들을 위해 감추어 두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큰 항아리에 지혜를 담기로 하고 그는 그 항아리를 갖고 길을 떠났습니다.
아난세는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현명한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하면 얼른 항아리 뚜껑을 열고 그 안에다 들은 대답을 다시 속삭여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나니, 더 이상 모을 지혜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제 신보다 더 현명해.”
으쓱해진 아난세는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고향 마을 어귀에 도달했을 때였습니다. 그에게는 문득 마을 사람들이 이 귀중한 지혜의 항아리를 탐내 훔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아리를 일단 숲속에 숨겨 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만나 인사를 다 나눈 다음, 몰래 항아리를 가져와 식구들에게만 보여 줄 생각이었습니다.
“어디에다 감추어야 안전할까?”
하고 중얼거리며 그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숲속에 있는 ‘카자우라’나무는 키가 커서 하늘에 닿을 것 같았습니다. 그 꼭대기에 숨기면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무 꼭대기로 항아리를 갖고 올라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궁리 끝에 아난세는 칡덩굴로 항아리를 배에다 묶었습니다. 항아리 때문에 배가 불룩해져 팔을 뻗으면 간신히 나무에 가 닿을 지경이었습니다. 기어 올라가기는커녕 나무에 매달린 순간 불룩한 배 때문에 뒤로 자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럼에도 미련한 아난세는 계속 올라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등이 벗겨지고 살이 터지도록 뒤로 나자빠졌지만 그는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토끼 한 마리가 그곳을 지나다 우연히 아난세의 딱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뒤로 자빠졌다가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일어나 다시 나무로 올라가는 아난세에게 토끼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 아난세야.”
갑작스런 말소리에 놀란 아난세는 다시 나무에서 떨어져 지혜의 항아리를 불룩 내민 채 땅에 벌렁 누웠습니다.
토끼는 얼른 뛰어와 아난세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이 항아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니?”
“그것은 비밀이야. 만약 이 비밀을 말하면 우리 둘은 그 자리에서 죽게 돼.”
“그래? 그렇다면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미련스럽니? 항아리를 등에다 묶으면 나무로 올라가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토끼의 이 한마디에 아난세는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는가 깊이 깨달았습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여전히 어리석은 것 같아. 이 항아리 속에 세상의 모든 지혜를 모아 넣었다고 기뻐했었는데 말야. 세상에는 아직도 나보다 현명한 이들이 많은 것 같구나.”
이 말과 함께 아난세는 배에서 항아리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주저 없이 카자우라나무의 둥치에다 내던졌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항아리 조각들을 보며 아난세는 말했습니다.
“이까짓 지혜들 다 세상으로 퍼지라지.”
- 서(西)아프리카 민화
-『 바보 마을의 영웅 』( 작은 제목 < 아프리카 민화집 >. ‘송미루’ 편역, ‘(주)창비’펴냄, 2008년 )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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